사진으로 말하기

신발... 기억 저~~아래..

phototherapist 2016. 2. 19. 21:26

 

 

 

                                                             인사동에서 본 비단신발.

 

  몇 명이 모여 얘기끝에 어릴 적에 신었던 신발 얘기가 나왔다.

나이가 그리 많지 않은데도 어느 사람은 검정 고무신을 신었고 어느 사람은 연배가 있는데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며

 구두에 빨간 가죽가방을 메고 등교했다는 사람과, 그것도 수입일거라는 추측을 하면서.

 듣고 있다 생각해보니 내 첫 기억의 신발은 하얀고무신에 연두색 줄이 그어진 신발이었다.

검정고무신과 하얀고무신이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했더니 검정고무신과 하얀고무신은 분명한 차이가 있단다.

하얀 고무신은 검정고무신보다 한 단계 위에 레벨이라며.

맞다. 

신발이 단순한 기능만을 한 것이 아니라 부를 상징하고 지위를 나타내고 직업을 보여주는

역할을 했음이다.

사람의 발자취를 보고 이력이라고 한다.

이력서를 쓰는 것도 그가 신고 걸어온 개인의 역사를 쓰는 것이라하겠다.  

발을 보호하는 것이 신발의 기본 역할이라지만 내게 신발은 여러 기능이 있었다.

어릴 적 형편 이 어려웠음에도 깔끔하게 입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도시에 사는 아버지의 사촌들이 자기 자식들을 입히고도 작지만 깨끗한 옷은 시골로 내려보내 우리 차지가 되었던 덕분이다.

 국민학교에 들어 갈 즈음엔 고급진 쉐터에 예쁜 가방을 맸던 기억도 새록인다. 그것이 그리 싫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식들 기 죽이지 않으려고 차거운 물에 시린 손 담그며 빨래를 열심히 해 입혀서 깔끔하게 하고 다닐 수 있었고 가난을 표 내지 않으려 신발을 검정 고무신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하얀 고무신을 신겼을 것이다.

 그것이 그 분들이 자식을 아끼는 마음이었고 그것으로 자식의 지위(?)를 한 단계 격상시키고자 했던 방법일 수도 있었겠다.

 무엇을 해 줄 수 없음에 그것이라도... 그렇게라도. 

  그런 고무신은 때로는 물고기를 잡는 도구가 되었고 우렁이를 넣어 느리게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어항이 되기도 했다.

찰흙을 담아 나무를 심기도 했고 맛난 반찬을 담는 그릇이 되기도 했다.

고무신과 한 몸이 되다시피 다이빙을 하여 메뚜기를 잡기도 했도 놀이감을 담는 장난감 바구니가 되기도 했다.

철철이 꽃이 필 때는 꽃병이 되기도 했고 귀에 대고 바람을 느끼는 장난감이기도 했다. 허공에 띄워 던진 신발을 찾아 두리번 거리면 옆에 있던 장난끼 많은 친구가 그걸 먼저 찾아 들고 뛰고 그런 친구녀석을 쫓아 숨을 헐떡이며 울먹이기도 했다. 그런 기억이 그립다.

 신발은 내 이력이었다. 하얀 고무신은 그런 내 이력의, 기억의 저 아래에서 나를 꿈틀이게 한다.

아마 지금도 여전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