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향기를 불러일으키다.
왜 그토록 오랜시간 그 곳을 벗어날 수 없었는가.
그 빛에 끌렸는가?
조금이라도 더 잘 보려고 경주마의 눈가리개처럼 두 손을 양쪽 광대에 대고
창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다 이마를 찧는 지경에 이른다.
내동댕이 처진 의자와 책장이 페허처럼 널부러진 곳,
창고도 아닌듯 한 공간은 쓸데없고 쓸 사람없어 방치한 곳으로 보인다.
그 곳에 취해서 돌아설 줄 모른다.
빛은 향기를 불러일으킨다.
그 향기는 기억을 끄집어낸다.
석양이 지는 코스모스길에 전봇대를 세며 걸었던 때를 기억했을 수 있다.
아궁이에 솔가루잎이 투닥이며 타 들어가던 때를 떠 올렸을 수 있다.
그 기억을 찾아본다.
그 빛은 가을 낙엽향을 닮았다.
노르스름하니 따스하다.
언덕진 솔밭길을 걷다 스치면 툭 꺽이며 떨어지던 마른나무등걸과 솔잎이 푹신한 숲이다.
향기나는 숲길을 떠오르게 한 건 무엇이었을까?
복잡하게 뒤엉킴을 본 것은 그 후다.
나는 이미, 뒤엉킴을 먼저보고 빛을 나중에 봤을지도 모른다.
계단을 오르다 마주한 공간은 빛을 더해 향기가 난다.
결혼식장의 화사한 신부와 테이블에 세팅된 온갖 꽃을 보고 나온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꽃향기가 코를 간지럽히던 것을 망각하기도 미안한 시간에
최근의 향기는 간데 없고 오래전 향기를 맡는다.
매커니즘의 오류다.
봄,여름, 겨울에도 향기는 있다.
그 향기는 누구네집 텃밭 한켠에 설익어 쌉싸레한 토마토향과 어우러지기도하고
비가 많이 오는날에나 물이 흐르는 도랑 아래서 돌멩이를 도마와 칼 삼아 콩콩 짓찌어 만들던
소꿉놀이 반찬향이기도 하다.
아카시아 잎을 따내어 부러 숨 크게 들이마셨던 풀향기와 하나가 되기도 하고
고구마를 깍다 묻어나는 녹말가루향이기도 하다.
때론 뽕나무밭의 진보라빛 오디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여름 끝자락에 바짝 매달려서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게 풍기는 여뀌향이기도하고
논둑을 지나는 길에 까끌하게 스치는 콩잎향이기도하다.
그 향기를 맡아 돌아 돌아서 기어이 향을 찾는다.
계절이 바뀔라치면 몰래 시름이며 열병처럼 앓곤했던,
그랬다.
흠~~~심호흡으로 가을향기를 들이마신다.
이런저런 향기가 뒤섞여 어떤향인지 모를때 긴호흡으로 들이쉬고 내 쉬며
가만히 내 안으로 침잠해 든다.
빛이 향기가 있는 곳으로 불러들이듯, 내 안에 얇은 실오라기 한 줄 따라가다보면
그 곳에 내 그리운 향기가 있다.
그 향기를 본 것이다. 향기나는 숲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