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쓰는 사진이야기> 신이 선택한 보라-by 이재현
에너지가 넘치거나 불안이 극에 달할 때
열정과 생명력, 두려움과 공포를 말하기도 하는 빨강과
차분하게 자신 안으로 들어가 편안함과 자유를 원하며
상실과 우울감, 긴장과 슬픔조차 지닌 파랑이 만난다.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고는 중요치 않다.
빨강에 없는 것이 파랑에 있고 파랑이 부족한 것을 빨강이 가지고 있다.
둘이 가진 양면성에 조화롭기를 바라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둘은 보라가 된다.
그 과정은 힘겨움이기도 하다.
우울과 상처가 깊어져 안정과 치유를 원하고 있음을 비로서
깨닫고서야 서로에게 스며들어 보라가 된 것이다.
자신의 특성을 간직한 체 다른 색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기꺼이 받아들임을 말한다.
서로의 장점을 내세우지 않고 스며들어 자신의 색을 더 빛나게 한다.
화려하며 활기롭고 때로는 차분게 억제할 수 있는 보라가 된 것이다.
느리게 걷는다.
보라가 먼저 나를 자극한다.
회벽을 따라 드리워진 그림자가 보인다.
겨우내 견뎌왔던 나뭇잎에 햇볕이 터를 잡고
대각선으로 지나는 선과 그 선을 나누는
가로선에 이르르자 구도가 들어온다.
순간 반응하며 번득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서 있다.
유모차를 끌고 지나는 부부와 중년의 여인들,
코트를 입은 남자가 고개숙여 아이의 손을 다잡아 지나고 나서 여인이 들어선다.
맞다.
들어섰다는 표현이 맞는다.
내가 그려놓은 프레임안으로 선뜻 들어와 준 그녀를 담고
더 이상의 셔터질은 필요없다.
그녀가 지나고 그 자리를 떠난다.
그녀는 파랑의 나였고 빨강의 나였으며 보라의 나로 이입된다.
뭔지 모를 모호함이 보라 하나로 말갛게 헹구어진 느낌이다.
신이 선택한 보라는 기울어 가던 마음의 균형을 올곧게 잡아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