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글로 쓰는 사진이야기, 잘자라 우리아가...-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8. 7. 19. 21:26

 

  어지간히 졸렸다.

시끌시끌 법석을 떨어도 곤하다.

세상 천사다.

이렇게 이쁠수 없다.

 

해먹에 얼굴을 묻고 자는 천사다.

아이보다 조금 큰 또 다른 아이가 얼굴을 가린 해벅을 들어 올려준다.

땀이 촉촉히 젖은 아이는 조금전까지 언니 곁에 매달려 있었다.

 

그들을 만났다.

우연히 만나지는 학교나 마을을 찾아간다.

사진을 찍어 프린트해서 줄에 걸어 작은 전시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사진이 나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몰려 앉아있다.

더우니 떨어져 앉을 것을 권하지만 옮기는 듯, 다시 모여들어 사진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한 장 한 장 나오는 사진을 보며 눈이 초롱인다.

프린트 되어 나온 자신의 사진을 보고 또 본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며 예감한다.

예사롭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또 한번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만 여전히 마음은 먹먹하다.

 

첫 경험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들의 초롱초롱한 눈 망울을 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기억.

어찌할 바를 알고 있었지만 과연 이 어찔할 바가 잘 하는 것인가?.가 고민되었던 기억.

아프리카를 다녀 온 후 시린 가슴을 어쩌지 못할 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달라고.'

물질적 풍요가 우리보다 적을 뿐이니 잠깐 다녀가며 흔들어 놓지 않았으면 한다.

지속적인 관심이 아니면 헛투로 오가지 말라는 것이고 행위에 대한 만족을 위해

자신들을 내세우지 말아달라는 바람이다.

냉정하리만치 말하는 것에 놀랐으나 그 말이 가슴에 남는다.

그들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나와 동등한 사람으로

나와 같은 어릴적 모습으로만 바라봐야 되는, 기본 중 기본을 잃었던 것이다.

 

오늘 나는 과연 그들에게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이방인이 작은 무엇을 건네며 쓰다듬어 안아준 따뜻한 손길과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길 바란다.

다음에 또 올 수 없음에 한낮 막연한 기대를 주지 않기를 바란다.

엄마의 손길보다는 언니 오빠의 손에서 자라고 보살핌을 받기도하는 아이들에게

엄마같은 몸집을 가진 사람의 온기가 엄마에게 안겼던 것처럼

포근하게 남아 있기만을 바란다.

 

어떤 것이 진정 행복이고 진정 옳은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내가 더 나은 사람이 아님을 알기만 하면 된다.

그들은 적어도 나보다 더 맑은 눈망울을 가졌고

사람을 아낄 줄 알며 기다릴 줄 알고 배려할 줄 아는 것이다.

눈 맞추면 하나같이 웃어주고 사진을 흔쾌히 허락한다.

노트 한 권, 연필 한자루, 볼펜 한 자루를 주며

다 가진 사람처럼, 다 누리는 사람처럼, 더 없이 행복한 사람처럼,

안스럽고 애처롭고 애잔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그들과 만나고 같이 웃고 같은 공간에 있었던 진한 기억이

서로에게 행복인 것이다.

 

 

그래도 혼란은 계속된다.

위로가 되는 것은,

그들에게 사진이라는 선물을 할 수 있음이다.

예쁘고 앙증맞고, 표정도 풍부한 자신의 어릴적 얼굴이 이랬음을

기억하며 그 표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어린시절, 그 나이때 기족사진을 보며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이기 원하지 않는다.

가식없는 그들이 지금 웃고 있으니 즐겁다라고 생각한다.

지금 즐거우니... 된 것이다.

 

앞으로 또 어느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프린트해서 줄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빛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 사진으로 인해 귀한 자신이 그 안에 있음을 알면 한다.

 

 

 

 

 교회계단에 앉아있던 자매다.

언니는 천진하게 놀다가 아이를 보면 엄마의 몸짓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래왔는지 가늠할 수 있게

아이를 한 손으로 안아 엉치에 걸치고 야멸차게 걷는다.

계단을 거뜬히 올라 집으로 들어가는데 아이는 익숙한 듯 언니에게 편안히 안겨있다.

 

 

 오늘 그들을 만난 건 어쩌면 그들보다 우리 일행일 수 있다.

자신의 가치관과 사고의 변화를 갖게되고 동정의 몸짓으로 대했던 미안함과

조금만 풍족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감정의 교차가 사르르 내려 앉을 때서야

그들이 살아가는데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가졌다고 생각하는 우리보다 더 풍요로운 눈을 가졌다.

환하게 웃을 줄 아는 것이다.

 

이방인은 아이의 촉촉히 젖은 머리칼을 쓸어만지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쓰다듬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곤하다.

세상에서...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무슨생각을 하건 상관없다.

나는 행복하다...라고 말하듯 아이는 곤하다.

 

잘자라 우리아기~~~.

'잘 자라' 말 속에는 평안하게 잘 자고 건강하게 잘 자라라 의미가 숨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하며,

잘자라 우리아기~~~.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