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엄마의 시간-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8. 10. 1. 19:31

 여러 액자에 있던 사진을 한 곳에 넣겠단다.

친정집 앨범에는 시간이 켜켜이 담겼다.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발견한다.


젊었던 엄마와 동갑이라는 이름을 달고 마을사람들이 찍은 사진이다.

바쁜 중에 꽃단장을 하고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을 것이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바느질감을 손에 들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부엌에서 불을 지피다 얼굴 마주하며 잠깐의 수다를 나누기도 하고

살림살이를 빌려주고 빌려와서 쓰고 가져다 주기도 하던 얼굴들이 생생하다.


앳된 엄마가 보인다.

곱고 앳된시절 엄마가 수줍게 서 있다.

지금은 팔순을 훌쩍 넘긴 엄마의 굽은 허리가 발목을 잡아 앉히고

한 시간이면 할 수 있었던 일을 하루를 잡고 해야하는 나이가 되었다.


담그지 말라는 김치를 서너가지 담그고 맛깔진 반찬을 정갈하게 만들어 자식을 맞이한다.

오려면 일주일 전에 말해 달라고 당부하는 깔끔한 성격으로,

시간이 짧으면 해 주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으니 길게 잡고 준비를 하려는 것이다.

자식들은 김치를 담그지 말라면서도 엄마의 김치가 그리워 담가주길 은근히 기대하기도 한다.

굽은 허리를 한 엄마의 힘겨움에 걱정이 앞서지만 그 맛을 포기하기란 쉽지않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만족해하는 엄마는 느린 걸음으로도 밑반찬과 국거리며 부족함 없이 준비한다.

내 자식에게 내가 하는냥과는 턱도 없는 것으로 간혹 부모에게 받은 것을 자식에게 해 줄 수 없음이 미안하기도 하다.


엄마의 시간은 환하게 피어난 적 없이 자식들 챙기고 보살피느라 시들해졌고

그 시들한 시간들이 모여 지금 더 시들한 엄마가 있다.

사진을 보며 이런 적도 있었노라 말하는데....당신도 앳된 자신이 예뻐보이는지 젊을적 사진 하나를 골라 액자에 넣어달란다.

그립지만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없고 그립지만 그 시절이 그립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의 시간은 잠시 잠깐 그 때에 머물고 딸들은 그 시간을 그린다.

가져가도 된다는 말에 냉큼 사진을 집어든다.

엄마는 지금도 그 때도 내게 있다.

곱게... 또 시들하게, 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