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열리다-by 이재현
깊이 숨겨뒀던 움을 틔우면 그때야 살아있다고 말한다.
기실 살아 있었으나 조용히, 표나지 않게 살아있었음이고
꿈틀거리는 생명은 오랜 세월 준비를 거쳐 눈에 띄고 보이게 된 것인데 말이다.
봄은 그 깊고 오랜 시간을 이제서야 알아보게 된 눈이 생기고 몰랐던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는 깨달음이다.
사람도 닮았다.
자신을 제대로 포장해서 말하고 행동하고 움직여야 비로소 그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고
인정하게 된다.
알리지 않고 자신의 자리,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이전의 나를 표현하는 방식의 대부분이었다면
이제 그런 세상은 없다.
묵묵함은 지속성을 말하고 그 묵묵함을 알리는 지속성의 부차적인 묵묵함이 더해진 것이다.
복잡한 세상에서 떠벌리지 않으면 알아주지 않는 세상이 되어 SNS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유튜브와 인스타그램과 카톡, 지금은 뜸하게 된 카카오 스토리 등등을 통해 부지런히 자판을 두드린다.
전시와 책, 강의와 1인 기업을 창업하고 1인 브랜드를 만들어 홍보에 홍보를 거듭하고 알려야만
살아있음을 알아주고 인정한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이다.
그 치열함이 여름을 닮았다.
탄생의 봄이 지나고 작열하는 태양에 달궈지고 담금질이 되고서야 여름이라는 열매가 맺히고
햇살이 자양분이 되어 여물게 한다.
여름! 강렬해서 좋다.
수업에 참석한 선생님들이 하나같이 '이제 여름이에요.'라며 강의장에 들어선다.
더워지기 시작한다는 말이기도 하고 강렬하고 치열한 여름 맞을 준비를 스스로 해야겠다는 것이다.
봄이려니... 하며 무방비 상태로 있던 나는 그 말에 화들짝 놀란다.
봄과 여름 사이를 달리는 상쾌함과 푸르름만을 알았던 나, 늦되게 치열함 속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
여린 꽃 들과 연둣빛 나뭇잎이 수도공고 교정을 수놓고 그 귀함에 취해 카메라를 들이민다.
치열함을 위한 준비다.
그들이 주는 위안으로 강렬한 여름이 열림을 맞이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면, 조용한 듯 시간 시간을 여름처럼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치열하게 살아온 날들을 채 체감하지 못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내내 겪었던 치열함이
처음인 것처럼 맞이하며 고단함을 잊으려는 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