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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서 하룻밤 로맨스-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9. 5. 4. 15:11

본 적 없고 알지 못하는 누구의 집을 방문한다는 것,

예전 같으면 감히 엄두를 못 낼 일이다.

가는 것도 불편해하고 오는 것도 화들짝 반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은 완전한 과거가 되었다.

왜, 어찌, 그렇게 변했느냐 묻는다면 사연은 여럿 있겠다.

사람을 쉽게 만나지 않았고 사람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금, 흘러간 사람은 흘러가는 데로, 다가오는 사람은 반가이 맞이하며

소중하게 대하는 것으로 관계를 정리하니, 한결 간단하고 깔끔하니 개운하다.

그것이 나를 일면식 없는 시골 마을의 어느 집으로 떠나게 한다.



좁은 골목을 지나 오르막을 차오르려니 그 집이다.

허름한 담장 안으로 고목이 된 자목련이 반기고 담장을 사이에 두고 어설픈 인사를 나누며 주인장과 첫 대면이다.

시골마을 내 집을 들어가 듯, 자연스럽게 집으로 빨려 들어간다.

대문과 지붕, 창고도 깔 맞춤인 집은 주인장과 안주인의 감각을 엿보게 한다.

'뭐 볼 게 있다고 시골집을 왔느냐.'라는 말속에 보여줄 게 없으나 볼 것은 많다는 뉘앙스가

그림자로 깔리고 손님맞이를 위한 저녁상이 마당에 차려진다.



마당에 앉아 달무리를 보며 갓 뜯어낸 푸성귀로 소박한 듯 화려한 식탁이 차려지고 수저받침은 개울에서 주워 온 키 낮은 자갈이 대신한다.

노란색 선명한 유채꽃이 장식처럼 옹기 뚝배기에 담겨 꽃밭을 이루고 쌉싸름한 머위대 된장무침이 입맛을 돋운다.

개울에서 주워 온 돌이 수저받침이 되는 시골생활이 신선하고 마당에 식탁을 차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이 사방이 콘크리트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로망이 된다.



아담한 마을이다.

손으로 꼽으면 금세 가구 수를 셀 수 있을 정도로 모여있는 작은 마을 오르막을 따라 걸으면

돌담과 배꽃이 흐드러진 흙집이 나오고 낯선 이의 출현을 강아지들이 짖으며 경계한다.

그들 경계 말고는 누구 하나 왜 왔느냐? 어디서 왔느냐? 조차 묻지 않는다.

왔다가 지나가는 사람이겠지.. 하며 별스럽지 않다.

불편을 주지 않겠다는 인심이 그대로 묻어난다.

집성촌이라니 집 앞을 지나는 모든 사람이 친척이고 아는 사람이란다.

대문 빼꼼히 열린 틈으로 누가 지나갈라치면, 들어오라며 손짓하고 지나는 사람도 선뜻 들어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별다른 인사 없이 슬그머니 집을 나선다.

자연과 어우러진 사람들의 몸에 밴 자연스러움이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앞 산이 정원이 되는 집 안은 아기자기한 안 주인의 손길을 느낄 수 있다.

100년이 더 되었다는 집의 골격은 부모의 사랑과 정과 삶을 존경하고 잊지 않겠다는 듯, 최대한 유지하여 지켜지는 범위에서 멋을 가미하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단다.

뜨끈한 구들방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구수한 향기를 뿜어내며 수줍어하는 청국장이 동침을 허락한다.

온몸에 밴 향과 뜨거운 방바닥의 열기로 후끈한 동침의 밤을 보낸다.

언제 적 경험인지, 그 조차 귀하다.


방문을 연다.

자연이 코앞이다.

산이 방안으로 들어오고 개울의 물소리가 우렁차다.

일상에 지루해 하던 여자의 로맨스, 시골마을에서의 하룻밤은 짧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