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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동철길은 추억을 소환-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8. 9. 17. 07:52



철길과 거리가 먼 들판 가운데 살던 사람에게 철길은 여행을 뜻한다.

버스는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는 수단이었다면 기차는 멀리 떠난다는 의미였다.

기차소리와 철길은 아스라히 먼 기억 속, 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간으로 데려간다.


길게 나 있는 길을 걷는다.

아파트 차단벽을 따라 자란 나뭇잎을 본다.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다.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추석이 다가오는 시점이면 대대적인 집안 대청소를 시작으로

겨울맞이 준비를 했다.

창호지를 바르기 위해 문짝을 떼어 마당 가운데 놓고 물을 뿌려

붙어있던 창호지를 떼어내면 둘둘 말린 바삭하고 깨끗한 창호지가 등장한다.

빗자루와 풀이 준비되면 문짝은 새 옷을 입는데 그 과정이 예술이다.

엄마는 밖에 나가서 꽃과 나뭇잎을 몇 잎 따오라 당부한다.

어떤 의미인지 아는 나는 후다닥 뛰어가 코스모스며 잎을 대령하고

손잡이 옆 창호지 사이에 엄마의 꽃이 다시 핀다.

그 꽃을 아파트 담벼락을 통해 본다.

안쪽에 피어 있을 꽃과 나무잎은 창호지 안 꽃처럼 보이고 날씨는 선선하니 그 때로 불러들인다.



오붓한 출사다.

출사를 가겠다는 인원이 적지만 그것 또한 괜찮다.

나눌 이야기가 깊어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장점이 있다.

이동이 자유롭고 의견 취합이 쉬워진다.

알고 싶은 것이 많아지고 서로를 볼 수 있는 시간 또한 많다.

그거면 된다.


철길을 걷는데 아이가 동행한다.

부모는 뒤에서 지켜보고 아이는 겅충이며 신난다.

저런 모습의 시간을 지나고 지나 지금을 나는 걷는다.

마음은 여전히 동심이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무리의 아이들이 가볍게 물통 하나씩 들고 온 걸 보니 점심 전 야외학습을 나온 모양이다.

철길을 뛰고 걷고 재잘대는 지금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기억해 낼 것이다.

내 기억 속 철길이 여행의 시작이 되었다면, 아이들의 철길은 어떤 의미로 기억될지...

철길을 걸었을 뿐인데 먼 길을 떠났다 돌아가는 듯하다.

풀 숲으로 이어진 철길 너머에 지금 내가 있다.

끊어진 듯 옅게 이어지는 길처럼 기억의 끝을 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