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다.
판이 벌어진다.
놀이판이라고 한다.
그들은 놀자고 했다.
무에 그리 중요한가? 라는 물음 뒤에 '한바탕 놀아보세!'라며 흥겨워 한다.
애닯고 한 많고 서럽고 힘겨운 것, 심각하고 어렵고 두렵고 수치스런 것도 한 바탕 놀이로 털어버리자는 것이다.
입 안으로 삼키며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을 탈을 쓰고서야 뱉어낼 수 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할 수 없는 말을 탈이라는 보호막을 쓰고서야 말하고
1년에 한 번 맺혔던 것을 풀어내고 살아낼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양반을 풍자하며 소리치고 뛰고 뱉어내고 나서야 후련함으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서민의 한풀이인 것이다.
풀어야 할 통로를 마련해 주고 마음껏 욕하고 소리치고 비난하고 풀어내라며 하루쯤은 눈 감아준 놀이문화였을 탈춤은
사뿐한 걸음으로 시작된다.
할미의 애절한 속내를 드러내는 푸념은
쪽박을 허리에 차고있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짐작한다.
평생을 궁핍하게 살아온 그녀는 마지막에 말한다.
'모진 삶은 잘도 간다.'고.
그렇게 모질었다는 삶에도 낙이 없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잘도 간다는 것은
어찌 이리 빠르게 흘러갔을까?를 한탄하며 애달아 하는 것과
그래도 그렇게 살아 온 것, 지금까지 살아내는 동안
힘겹고 어려운 일들만 있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할미의 신세타령을 듣고 있자니 애잔하다.
바닥에 앉아 신세한탄을 한 뒤 할미는 평생의 한이 녹아있는 춤사위를 보인다.
몸은 그녀의 삶을 기억한다.
느리게 움직이는 몸에는 절제와 애절함이 녹아난다.
땡중과 각시탈, 양반과 한바탕 놀이판이 흥겹다.
내 안에 담아 둔 것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마음껏 이야기하고 놀다보면
그동안의 시름과 어려움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것은 객관적인 위치에서 나를 보게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내 안에 있을때는 커 보이던 것이
밖에서 가만히 들여다 보니 그리 심각하지도, 크지도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안에 함입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나도 다른 사람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하며 깨닫게 되는 것이다.
탈춤은 양반과 기존 세대에 대한 비판과 불공평함을 비난하는 것을 넘어
덜어내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런 삶도 살 만 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이 어린친구는 더불어 한바탕 잘 놀았다는 표정이다.
'무에 그리 중요한가? 한바탕 놀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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