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동피랑 벽화마을,묻지도 따지지도 마라.-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8. 5. 22. 14:22

  간혹,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를 논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후천적인 학습과 연습,그간의 쌓여 누적된 경험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성장한 환경과 여건이 바라봄의 각도를 결정하기도한다.

어떤 유형의 부모를 만났으며 형제와의 관계는 어땠는지는 사회성의 근간이 된다.

스치는 수많은 사람중에 누구를 만났고 어떤 영향을 받았고 그 영향권에 지금도 속해 있는지 벗어나 있는지도 중요하다.

여건과 환경과 문화와 경험, 조상의 조상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의 우주는 무긍하며 다양한 요소들로 소용돌이친다.

그 요소들이 어우러져 무엇을 볼 것인지를 결정하고 관심갖게 한다.

사진을 찍는 방식도 이에 다르지 않다.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해도 수많은 기억들이 작동하며 순간을 잡아낸 것이라면 과연 선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모든것을 그렇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기질로 인해 학습되어졌다면 그것 또한 온전히 선천적인 것인가?

길고 긴 세월을 물려 내려 온 것이 지금의 그를 있게했다면 그것 또한 선천적인 것일지?....

단정지어 무엇이라 말 할 수 없음이다.

태어나 자라며 다양한 요소의 결합이 지금을 만들고 그의 방식대로 열어 놓은 물길을 따라 받아들여 왔다면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를 명확히 나누기란 쉽지않다.

프로이드의 확정적 성장이론보다 융의 무한 가능성, 특히나 중년이후의 가능성을 논한 것에 매료된 기억이 있고

여전히 그 믿음이 맞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람이 있다면 무한가능성이 있는 후천적 요인에 비중이 컸으면 한다.

선천적이냐 후천적이냐를 따지기보다는 지금 무엇에, 어떻게 반응하며 관심있어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동색의 옷을 입은 아이가 뛰어가고있다.

순간이다.

생각하고 고심하고 구도를 잡는 사진이 아닌 눈과 마음과 손의 협응으로 인한 선택이다.

내 안에 꿈틀대던 감각이 재빨리 알아차린 결과다. 

뭐라 말할 시간도 머뭇거림도 없다. 찰깍!.

 

한 무리의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엄마들은 비가 오락가락하는 분위기 좋은 날, 분위기 있는 카페에 취하고

아이들은 골목을 오가며 떠들썩하다.

스트라이프 티셔츠의 아이가 벽화의 남자아이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찰깍!!

 

그녀를 봤다.

엇비슷한 보폭으로 걷던 그녀가 어느 순간 앉는다.

벽화에 붙박이 된 소녀와 닮았다. 찰칵!!!

나로 빙의되어 보이는 웅크려 앉은 그녀를 못 본척 지난다.

그녀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벽화마을에서 찍은 3장의 사진이다.

 

무엇을, 어떻게?라는 단어가 있는지조차 모르게 순간이다.

이성적인 판단과 생각은 일단멈춤이고 스위치를 켜면 자동으로 가동되 듯,

작은 하나가 빌미가 되어 싱크홀처럼 빨려들간다.

알록한 벽화 속 아이가 되어 타임머신을 탄다.

비가 철렁하게 와야만 겨우 물이 흐르는 또랑 아래 여자아이가 있다.

납작한 돌멩이 위에 쑥을 짓찧어 풀잎 그릇에 담아내며 활짝 웃는다.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깡총이며 줄넘기를 하는 아이도 있다.

발끝까지 닿는 빨강 가방을 흔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으로 오는 아이도 보인다.

키큰 홍초꽃이 담장을 이루는 교문앞에서 강아지와 뛰어가는 아이가 있다.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머리 양갈래로 땋은 작은 아이가 따라온다.

햇살 가득, 기분을 환~!!!하게 하는 그 시간으로 완벽하게 달려간다.

 

언제나 그렇듯,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