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운명적 만남이다.
사진을 찍어와 들여다 보면,
알지 못했던 뜻하지 않은 것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이런 것을 우연의 법칙이라고 한다.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지거나 일어나는 일을 우연이라 한다면,
내가 찍어 온 사진은 과연 우연의 결과였을까?
두정엽은 주의를 배정하는 일을 맡아하는데 우반구는 전체 세부 특징에 관심을 갖고 좌반구는 국소 세부특징에 더 관심을 가진다.
이 시점에서는 좌반구의 활발한 운동으로 인한 세부 특징에 관심을 더 기울였을 가능성이 크다.
내 기억저장 장치는 프레임을 잡아낸 전체풍경보다 일부만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의구심은 남는다.
진정 우연일 수 밖에 없는 것인가?
칼 융은 이유없는 말과 행동은 없다고 했다.
그 예로 단어 연상검사를 실행했는데 그때 그때 연상된 것을 말하고 소요 반응시간을 측정하여
콤플렉스와 저항, 갈등영역를 드러낸다고 봤던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사소한 실언, 단어를 넣고 빼는 것들은 그런 작용의 한 가지라고 봐도 된다.
그 연결선상에 선 이미지, 사진은 그것을 봤음에도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구석 깊은 곳에 저장하고 있으나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 일 수있다.
이미 좌,우반구의 활발한 운동작용으로 감지하였으나 인지하지 못할 뿐,
전체세부 특징과 극소특징에 노출되어 반응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만약 독립된 물체와 독립된 위치로 시각이 주의를 기울였다면 전체 프레임으로 사진을 구성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프레임이 사진의 의미와 그가 바라보는 시선을 잘라 낸 것라면
프레임 안으로 끌고 들어온 것과 프레임 밖으로 밀어낸 것도 그의 의도인 것이다.
그런고로 나는 전체를 보고 사진에 담고, 그 전체를 이제야 재인식하며 역으로 더듬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연의 법칙은 우연이 아닌 운명적이고 다분히 의식적인 것이다.
이 사진에서 가장 먼저 본 것은 남자였다.
그리고 커피숍 카운터에 여인을 봤다.
그 여인 너머로 순간에 들어온 왼 손과 창문에 반영된 사람까지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야 그들을 내 의식속으로 가져와 어둠 안에 묻혀있었던 그들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듯, 우린 이미 그렇게 만나질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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