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풍경 뜯어보기-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9. 6. 27. 23:13

          풍경을 샅샅이 뜯어본다.


갈색 가방을 들고

청바지에 검정 셔츠를 입은 금발 여인이 경쾌한 걸음으로 지난다.

그녀의 오른쪽 창으로 파란빛 낮은 가구가 놓이고 버스와 남자도 들어있다.

유리로 된 장식장과 창 쪽 가구 위에 진열된 작은 상자들을 보노라니 무언가 파는 곳인듯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도 흥미롭지만 속내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은 더 흥미진진하다.

휙 지나친 풍경 속에 수많은 비밀이 숨어 있다면, 과연 우리네 삶에도 밖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큰지, 밖으로 보이는 것과 안과 같은 풍경이라면 흥미롭게 바라보기나 할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며 풍경을 뜯어보기로 한다.


열린 문 안쪽을 보노라면, 무릎을 구부정하게 굽힌 진지한 이발사가 보이고

그에게 나를 맡겨버린 손님은 눈가리개를 하고 잠이 들었는지 평온한 표정이다.

아마도 작은 소리로 코를 골고 있는지도.

손님의 구레나룻을 면도로 다듬는 이발사도 손님 못지않은 구레나룻에 타투로 멋을 부려 그냥 봐도 멋진 대

멋쟁이 이발사가 진지하기까지 하니 그의 전문성까지 더불어 돋보인다.

'네가 멋지니 나도 너만큼 멋지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기대와 신뢰가 준다.

 위층에는 징 박힌 벨벳 소파에 남자의 머리가 보인다.

손님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시 오수를 즐기고 있는가 보다.

남자 왼쪽 벽면에 몇 가지 제품이 심플하게 진열되어 있다.

이 정도 되면 barberino's라는 크림 판매를 겸한 바버 숍임을 알 수 있다.

첫인상으로 그를 다 알 것 같기도 하듯이 자세히 보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러나 겪어가며 부딪혀가며 시간을 가지다 보면 더 많이 알게 되고 친밀하게 된다.

툭 찍은 풍경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도 같다.

그것을 찍을 때 내가 무엇에 끌려 셔터를 눌렀는지 알아채게 되면 그 풍경에 더 정이 가듯이

보이지 않았으나 순간적으로 작동하여 잡아냈을 그 무언가를 다시금 찾아가는 여정이 사진에도 필요하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사진을 찍었을 때를 전제로 한다.

문제의 그림 액자다.

이발소 왼쪽 전면에 걸려있는 유머러스한 액자 속 풍경이 웃음을 자아낸다.

면도를 하다 말고 이발사가 멋진 몸매의 아가씨에게 반한 듯 바라보고 있다.

아가씨도 선글라스를 내리고 그를 바라본다.

그에게 면도를 맡긴 손님은 면도크림을 담뿍 바른 채 놀란 눈을 치켜뜨고 있다.

이 풍경을 보고 사람들 유형마다 반응이 다를 것을 예상한다.

비판적, 통제적, 규제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은 '저런 위험한 행동을... 쯔쯔쯔. 다시는 거기 이발소에 가지 말게.'

양육적, 보호적, 동정적, 지지적인 사람은 '놀라지 않았어? 위험해도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네.'

이성적, 논리적, 합리적, 객관적인 사람은 '저 상황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니 신고하거나 규제나 제재를 가해야겠군.'

본능적, 자발적, 창조적, 호기심이 강한 사람은'와우! 멋진 아가씨를 보면서 면도를 할 수 있다니, 대단한데!.'라는 반응을 할 것이다.

이처럼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마다 다른 풍경을 본다.

사물을 바라보는 것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각자 다르며 무엇을 바라보고 사고하는 방식과 반응하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한 장의 사진 속을 지극히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건물과 면도를 하는 사람과 면도를 맡긴 사람, 지나는 사람과 사물들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각자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풍경을 바라볼 것이다.

기꺼이, 각자의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