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아까 나를 봤어?-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9. 6. 25. 00:13

촌스럽고 투박하고 느릿한 말투가 정스럽다.

고향 동네 한옥마을에서의 첫 만남이다.

담장에 기댄 어르신 두 분이 짧은 안부를 묻고 각자의 길을 가려 하는데 불러 세워

사진을 찍는다.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고 반대 방향으로 가시는 어르신께 눈 인사를 한다.

 아이처럼 느리게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골목을 벗어난다.


  골목을 돌아 나와 식당으로 들어서려는데 분명 반대 방향으로 가셨던 어르신이 식당 앞 벤치에 앉아있다.


'어? 언제 오셨어요~?.'더딘 걸음이었고 반대 방향으로 가시는 것을 보고 인사를 했었다.

식당으로 걸어온 우리보다 먼저 와 앉아 계시는 어르신을 보고 반갑고 놀라서 질문을 던진다.

며칠 사이 데자뷔? 이탈리아에서 만났던 할아버지와 비슷한 경험.

'나를 언제 봤어? 아까 나를 봤어?'라는 답이 온다.

한옥마을이 삶의 터전이니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고 찍히는 일이 잦아서 무뎌지셨던지

아님 사진 찍는 것을 별스레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셔 서겠다.

좀 전에 골목에서 뵈었다고 하니 그러냐며 여기가 지나는 길에 쉬는 장소란다.

한참을 다리를 괴고 앉아 지나는 사람을 바라본다.

  짱짱했을 다리는 이제 몇 걸음 걸으면 쉬었다 가야 될 나이가 되었다.

넘어지고 비틀거려 중심조차 잡을 수 없었던 아기였다면,

반듯하게 걸어보려 애썼던 때를 거쳐 두 발로 단단히 버텨 중심을 잡아 뛰어놀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겠다.

다딤이질로 빳빳하게 풀 먹인 까슬한 모시옷 입고 살랑 나들이하던 처녀 적도 있었겠고

복작거리다가도 천사처럼 잠이 든 아이를 보며 배시시 미소 짓게 하는 결혼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살림하랴 공부시키기 위해 일하랴 강단 있고 고집스레 버텨온 시간이 지나 하나 둘 자식들이 떠나고

한적하고 조용하던 한옥마을에 덩그러니 남게 되었을 어르신은 이제 몇 걸음 떼어놓으면 쉬기를 반복해야하는

또 다시 아이가 되었다.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는 놀이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 하루일과 중 태반일테다.

타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길가에 놓인 벤치에 앉아 지켜보는

느린 걸음의 휴식이 올곧게 서 있으려 애썼을 시간의 보상 아닌 보상이 된 것이다.

탱글 하니 앳된 아가씨적을 가늠하게 하는 어르신은 그 시절을 기억하려는 듯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으셨다.

아이들을 키우고 건사하며 채전을 가꾸었을 노곤함에 치여 이제는 다시 아이적 걸음걸이가 되어

천천히 느리게, 넘어지지 않으려 쉬엄쉬엄 걷기로 한다.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