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사진, 유치하도록 직접적인 표현을 위한 기다림-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9. 3. 28. 22:09

느린 걸음이다.

이보다 더 느릴 순 없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걸음을 뗀다.

느리나 씩씩하게.


'더 느림'이라는 카페다.

느림도 느린데,

얼마나 느려야 '더 느림'일지.

그 이름이 나를 사로잡은 이상,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나를 끌어당긴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유추해본다.

창신동의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바쁘게 골목을 오가는 오토바이는 느림이라는 단어를 결코 알지 못한다.

오토바이가 지나거든, 사람이 알아서 비켜주라는 당부를 할 정도로

시간을 다투는 봉제재료를 날라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쌩쌩 지나는 오토바이를 제외하고는 느리고 느린 동네가 이곳 창신동이다.

옛 것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골목은 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그 공간에 어우러진 사람들은 정스럽다.

계단 하나, 벽에도 그림을 그려 넣어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는 사람을 쉬어가게 한다.

절벽에 지은 집들은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게 이 세상과 동떨어진 느림을

유지한다.

그 영향이었을 거라고 단정 짓는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편승하지 않고 느리고 느리게 흘러가는 골목을 걸으며

'더 느림'이라는 단어와 이곳이 닮아 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이 나를 붙잡았을 것이다.

이유 없는 것은 없다.

눈을 빼앗고 마음을 가져 간 무엇은,무엇이어야 하는 이유 또한 갖고 있는 것이다.

그에 어울리는 피사체를 찾는다.

텍스트에 적절한 피사체를 찾고자

유치하도록 직접적인 표현을 위한

기다림이 그것이다.

작정하고 기다린다.

텍스트와 피사체에 맞아 떨어지는 합당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는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느려도 된다고 말하는 더 느림 앞을 느리게 걷는 ,

느린 동네 토박이 할머니.

그것은 느린 그림의 완성을 위한 기다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