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자란 곳, 정서적 토대가 된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명확한 줄 긋기식 규정은 없다.
어느 순간부터 어디까지라고 시간을 말하기도 어렵다.
나를 만드는데 커다란 일조를 하고 내 세계를 구축하는데 공간과 시간, 끈적하게 얽힌 마음까지 더하게 되고
부모형제, 친구와 노닐던 기억의 다양한 자양분이 있으니 고향을 단순한 공간으로 나눌 수도,
시간으로 말하기도 애매한 복잡함을 가진다. 단순한 장소의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사람이 어디서 똑떨어지는 것이 아닌 과거에서 와서 지금이 있듯, 고향은 과거이며 현재고 미래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하고 앞으로의 삶에도 적지 아니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고향은 마음 깊이 들어와 앉아 있다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발걸음 하게 한다.
간혹 누군가는 아픈 기억이 마음 한구석에 박혀서 찾아갈 수조차 없기도 하고
섣불리 고개 돌려 바라볼 수 없게 크게 자리하기도 한다. 그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각자의 고향이라 말하는 곳에 눌러 사는 사람과 떠났다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사람과
떠나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와 오랜 기다림 끝에 돌아가는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고향을 벗어나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물리적인 거리는 떨어져 있으나 마음은 그곳에 머물기에.
어머니와 어깨동무를 한 그다.
오누이 같고 친구 같은 표정이 그들의 관계를 말한다.
툭 던지는 말속에 믿음이 쫀득하다.
뭐여~? 고맙다는 말이고
얼라~,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고
아이고~.'는 손사레의 애교로 수긍이고 긍정이다.
간결한 언어 속에 무수한 뜻이 담겨 있고 그 뜻을 알아차리고, 놓치지 않으려고 그는 틈만 나면 고향으로 달린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물인 두 사람이 '보물창고'앞에 섰다.
진정,고향이다.
대 선배인 그와 아직 뽀송한 솜털의 아이들과의 선후배 만남이다.
아담한 마을을 지나 작은 걸음으로 오갔을 학교에 가기 위해 밤새 개구리가 울어댔다는 논길과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밭을 지난다.
먼지 풀썩이며 뛰어놀았을 운동장은 곱게 잔디가 깔려 있고 여전하다고 상상하게 되는 것은 아이들의 왁자함이다.
왁자함은 몸짓과 목소리로 생생하게 말하고 있음이며 맑음이고 밝음을 증명한다.
정중(?) 한 대면을 시작으로 아이들의 사진을 찍는다.
개구쟁이 아이였던 사람이 내로라하는 사진 명장이 되어 나타난다.
집중하는 아이들을 본다.
어느 아이는 꿈 하나를 가지게 되고 어느 아이는 지나는 말 한 마디로
꿈을 키워가기 바란다.
찍힌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걸어 미니 전시를 한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프로필 촬영이 끝났는데도 귀가 전에 아이들 몇몇이 도서관에 다시 찾아온다.
궁금한 것이다. 자신의 사진을 다시 보고 싶고 찍혀진 사진을 가지고 갈 수 없을까? 해서다.
맑음에 밝음을 더해 나를 아끼는 마음 하나를 더 가진 오늘이다.
전교생이 35명이라고 했다.
모두가 언니 오빠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선배고 선생님이다.
선생님도 근처 동네에 살던 사람이라 하고 몇 걸음 떼면 이 동네서 만나고 저 동네 가면 마주친다.
그들의 정서나 공감대, 감정적 유사성은 유대관계를 돈독하게 하기를 넘어 끈끈하게 만든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어우러짐은 강제하지 않고 묻고 들어주는 어우러짐이다.
한 사람의 고향을 방문한다.
고향에 가면 자동 회귀의 기능이 발동하여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하는 곳,
그의 고향에 가서 각자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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