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사진,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9. 6. 17. 01:39

  언덕 위에 자리한 오르비에또.

푸니쿨라를 타고 올라가 버스로 털컹거리는 골목을 지나니 환하게 빛 나는 대성당과 마주하게 된다.

어느 골목에서든 성당이 보이니 길치인 사람도 다소 안심이 된다.

오리비에또 대성당의 외관을 갖추는데 100여 년이 걸리고 완공까지는 300년이 걸렸다니

얼마나 많은 사연이 그 웅장함과 화려함 속에 담겨 있을지...

웅장함에 매료되어 눈을 뗄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 정신없이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 순간,

화려함을 보려 함인지, 빨강 베레모를 쓰고 체크무늬 남방에 멜빵과 체인으로 장식한 멋쟁이 그가 볕 좋은 담벼락에 기대앉는다.

그가 앉은 담벼락의 벤치 역할을 하는 턱은 성당 옆벽의 무늬를 옮겨 놓은 듯하다.

소소한 것까지도 연관이 있고 허투루 두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니거니와 경이롭기까지 하다.

잠깐 눈 돌린 틈에 몸을 일으켜 골목으로 들어서는 그의 뒷모습을 아쉬운 듯 바라본다.

그와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기웃거린다.

조깅을 하는 사람과 관광객들이 간간이 보이고 간판 옆에 박재한 곰 머리를 걸며 영업을 준비하는 젊은 청년과

상점 홍보를 위해 이동 간판을 내어 놓는 사람을 본다.

나무와 꽃으로 집집마다 가게마다 이쁘게도 장식한 골목에 취하고 빨래가 널려 있는 베란다를 통해 사람 향기를 쫓느라

눈도 마음도 두리번거린다.

그 앞으로 할머니 한 분이 시장바구니를 끌고 가신다.

뒤를 따라 골목을 나서려던 차에 빨강 모자의 그를 본다.

잠깐의 만남으로 아쉬웠던 그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옛 연인을 만난 것 마냥 가슴이 콩닥거린다.


 첫 번째는 우연일 수 있다.

두 번째는 필연이다. 골목을 접어든 그가 가게 앞에 선다.

끌리듯 그의 가게 앞에 다가가 오픈을 위해 정리를 시작한 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는다.

들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포즈를 취한다.

그와 눈을 맞춘다.

먼 길을 돌아 만난 그와 그냥 헤어질 수 없었다.

어떻게 만난 인연이고 얼마를 달려와 만났음인지...

그를 쉬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위해 달려온 것만은 아니나 그를 만나기 위해 지금 여기에 있다.

사진으로 그를 담는다. 잠깐의 인연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Diocese of Orvieto-Todi 앞에서 그를 보지 않았다면, 골목을 돌아서는 그가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이미 그를 눈과 마음으로 담았고 더 이상 그는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진으로 누군가를, 무엇을 담는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일 수 없다.

온 우주에서 그 순간에 그만을, 그곳만을 잘라 내 안으로 들여놓는 것이고 마음으로 그 순간만을 받아 안는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수억년을 돌아 온 듯 하다.

풀리지 않아 머리속을 뱅뱅돌며 아쉬움과 미련으로 남겨두었던 수수께끼를 드디어 풀어낸 후련함이다.

이처럼 사진은

답이 없을 것 같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되고 연결고리가 된다.

몰랐던 것을 사진 한 장으로 알게 되기도 하고 막연하여 뿌옇게 안개에 쌓여있던 것이 말갛게 개어 환해지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사진이다.

답이 없을 것 같아 막막하던 것이, 어느 순간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게 되기도 하고 가까이에, 흔히 있는 것이 답인 것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알게되어 어이없어 하기도 하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받아 안았던 그 마음으로 내 마음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떻게 보고자 하는지 찾아가 보기로 하자.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엉뚱한 곳에 답이 있을 수 있다. 수수께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