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말하기

아이들의 놀이처럼-by 이재현

phototherapist 2019. 12. 22. 12:08

인간의 생존 활동이나 힘겨움이 따르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은 놀이일 수 없다.

막연한 휴식이 아닌, 몸과 마음을 움직이고 정서적, 감정적 공감과 만족감을 얻어서 즐거울 때 놀이가 된다.

놀이는 이해관계를 떠나서 자발적이며 즐겁고 흥미로우며 자유롭고 해방감을 동반할 때를 말한다.

         

마탄사스 예술 학교 근처에 아이들이다.

몰려다니며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거리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급기야는 슬리퍼를 손목에 끼고 맨발이 되어 술래잡기를 한다.

슬리퍼를 손목에 끼우다니...

뛸 때 걸리적거리는 슬리퍼를 덜렁거리지 않고 거추장스럽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가 아이들에게 손목에 슬리퍼를 차게(?) 했고

아이들이어서 가능한 것이다.

신발을 벗고 뛰어다닐 수 있는 것은 그 나라라서 보편적인 것일 수 있거니와 문화와 환경의 차이일 수 있다.

맨발이 될 수 있음은 우리의 어릴 적 운동회를 상상하면 가능해진다.

신발을 손에 움켜주고 달리기도 하고 시작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달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슬리퍼를 손목에 끼워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슬리퍼의 용도는 발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발이어야만 되었다.

그것이 손목에 끼워질 수 있는 물건이 될 줄 몰랐기에 그 모습을 처음 본 어른인 나로서는 신기하기도 하고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라 작은 다름이 아차! 싶게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다.

열려 있고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어른들의 폐쇄성과 이제 갓 하나씩을 배워가고 있어 아무것도 모른다고 치부하는 아이들의

무한한 확장성과 상통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어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지.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어른들은 어른이라는 틀에 갇혀 더 이상 보려고도 더 이상 바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지식은 풍부할지 모르나 마음이 말하는 것을 잘 듣고 잘 따라가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아이들은 본능적이다.

본능이라는 것은 몸이 마음이 말하는 대로 따르려는 경향성을 말한다.

최소한의 도덕적인 규범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롭게 말하고 즐거워야 하며 정서적, 감정적인 공감과 즐거움을 동반하는 만족감을 갖는 삶이어야 함은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이고 목표일 수 있다.

힘겨움을 동반하지 않는 것이 놀이라 했다.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하며 살아갈 의무와 권리 또한 가지고 태어난 우리라면, 무엇을 하겠다는 목적과 목표를 두고

놀이를 하면 된다. 어쩌면 너무도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문제를 가장 쉽게 풀어갈 수 있는 것이 발상의 전환이고 사고의 변환이다.

삶은 놀이다


 

충분히 놀이일 수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면 된다.

내가 어떤 사고에 매여 '그것이어야만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지에서 깨어나면 된다.

수많은 장점과 행복을 눈 질끈 감고 보지 않으려 했던 것에서 벗어나면 된다.

아이들의 놀이처럼 살아가는 법이다.

때때로 술래잡기에서 술래가 되어 약이 오르기도 하고 잘 찾아지지 않아 속상하기도 하며 쉬 잡혀버려 울고 싶기도 하지만,

더 많이는 즐겁고 흥미로우며 자유로우니 말이다.